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아 전쟁 (문단 편집) ===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 여름이 되자 이탈리아를 떠나 갈리아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을 계획했다. 이것은 카이사르가 전해의 브리타니아 침공 성과가 불충분하다고 느꼈고 브리타니아에서 두 부족을 제외하고는 볼모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이번엔 기병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갈리아의 귀족들도 모두 데려가기로 했다. 귀족들 중 특히 신분이 높은 이들은 기병 지휘관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카이사르의 결정에 대해 저 위의 갈리아 전쟁 1년째에 등장한 바 있었던 [[둠노릭스]]가 강하게 반발했다. 둠노릭스가 소속된 하이두이족은 바로 갈리아에 카이사르를 불러들인 부족으로 카이사르가 갈리아의 패권을 차지하자 그들은 갈리아 전체의 맹주로서의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실상은 카이사르가 하이두이족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사실상 로마의 패권하에 갈리아를 편입시킨 것이었지만 카이사르의 내정 간섭은 별로 없었고 부족들의 자율을 배려하는 편이었으므로, 과거 세콰니족을 내세우고 갈리아 전체의 패권을 가졌던 게르만인(수에비족)보다는 반발이 적었다. 따라서 하이두이 부족 내에서 카이사르를 불러들인 족장 디비키아쿠스의 정치적인 입지는 튼튼했다. 이렇게 되자 친형인 디비키아쿠스가 가지고 있는 족장직에 도전하는 둠노릭스는 불만이 많았고, 또한 카이사르의 꾸준한 정치적 공작은[* 카이사르는 자율을 보장하는 입장을 보였으나 반 로마파가 유력부족의 수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참견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트레베리족'''의 경우, 인두티오마루스와 킨게토릭스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반 로마파의 인두티오마루스에 대하여, 카이사르는 다른 부족장들에게 친 로마파인 킨게토릭스를 지지하라고 노골적으로 부탁했으며, 인두티오마루스의 측근들을 대거 볼모로 지명하여 인도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하이두이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두이족의 반 로마파의 수장인 둠노릭스에 대해 카이사르는 그를 언제나 기병으로 소환하여 자신의 근처에 두었다. 이로써 둠노릭스는 정치에 참여하기 어려웠고, 또한 그의 의도와 정반대로 카이사르가 로마의 패권을 다지는 일을 군사적으로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둠노릭스로 하여금 세력을 키우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카이사르에 의해 브리타니아로 동행하게 되자 마침내 분통을 터뜨리고 카이사르에게 반항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기어이 그를 동행시키고자 했고 그를 엄중하게 감시했는데 마침내 둠노릭스가 승선의 혼란을 틈타 탈영하자 카이사르는 곧바로 대부분의 기병을 보내 그를 추격하여 죽였다. 그 뒤 카이사르는 5개 군단과 기병 부대 대부분을 800척의 배에 승선시키고 도버 해협을 건너는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이토록 배의 숫자가 많은 이유는 강을 건너는 데 상인들의 배와 갈리아인들의 어선들을 모두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큰 해전의 경우 2~300척의 배가 동원되었는데 이러한 배들은 트리레메, 이후엔 콰드리레메라 불리는 전함들로 카이사르가 동원한 배와는 달리 엄청나게 크고 비싼 전함들이었으므로 카이사르가 동원한 배의 숫자와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다.] 1년 전처럼 브리타니아인들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군의 상륙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자 겁을 먹고 군대를 내보내지 않았으며, 이에 브리타니아군의 방해없이 상륙한 카이사르는 10개 대대[* 10개 대대면 1개 군단에 해당된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1개 군단을 남기기보다는 각 부대에서 차출한 대대로 1개 군단에 해당되는 숫자를 구성해 남겨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이다.]와 300명의 기병을 남겨 배를 지키게 한 뒤 전군을 이끌고 적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브리타니아인들은 카이사르군과 정면으로 싸우기보다는 빼곡히 있던 숲의 지형을 활용해 게릴라전으로 버티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카이사르군의 진격로 곳곳에 요새를 구축해 그의 진로를 방해한 뒤 로마군이 행군 중일 때 공격하거나 숙영지를 건설할 때, 혹은 군량을 확보하거나 말을 먹이기 위해 초원에 기병을 풀어놓았을 때 공격하는 식으로 틈틈히 맞섰다. 로마군은 싸울 때마다 격퇴했으나 브리타니아인들은 가벼운 무장을 한 이점을 활용하여 전체 부대가 반응할 때 재빨리 숲속으로 퇴각했다. 그렇다고 기병으로 추격하기도 마땅치 않았는데 브리타니아인들은 기병에겐 전차를 내보내 상대케했고 기병이 조금이라도 군단병에게서 멀어지면 일제히 전차에서 내린 보병들로 기병들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문에 기병 역시 군단병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고 따라서 브리타니아인들은 추격의 걱정없이 공격했다. 또한 충분한 수의 예비대를 후방에 두어 이러한 게릴라전에 지친 브리타니아인들과 재빨리 교대하는 식으로 체력의 저하를 막았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이 작전을 지휘한 브리타니아군의 총사령관 [[카시벨라우누스]][* 카투벨라우니족 출신으로 추정된다.]의 영토를 침입했다. 카시벨라우누스는 강 건너에 부대를 집결시켜 로마군의 도하를 저지하려고 시도했으나 로마군이 용감하게 강을 건너 선봉부대를 패주시키자 즉시 군을 물리고 자신의 영토 내의 가축과 사람 및 재산을 모두 숲속 깊은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로마군이 식량 확보를 위해 조금만 흩어지면 즉시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카시벨라우누스의 게릴라 전술과 청야전술의 활용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카이사르는 카시벨라우누스에게 왕이 살해된 바 있었던 브리타니아의 가장 유력한 부족인 '''토리노반테스족'''과 강화를 맺고[* 카시벨라우누스는 카이사르에 맞서 그야말로 게릴라전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의 뛰어난 전술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토리노반테스족의 경우, 브리타니아의 강력한 부족이었으나 왕이 살해될 정도로 참패했던 것을 보면 카시벨라우누스는 이미 브리타니아 내에서 적수가 없었던 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캐내 카시벨라우누스가 가축과 사람을 모아놓은 장소를 파악한 뒤 급습했다. 이 급습은 성공을 거두어 카시벨라우누스의 부족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카시벨라우누스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진영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자 카이사르의 본군을 공격하는 대신, 다수의 병력을 동원하여 해안가에서 배를 지키고 있었던 10개 대대의 로마군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수비는 매우 튼튼했고 휘하의 병력이 간단히 격퇴당하자 카시벨라우누스는 마침내 카이사르에게 사절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카이사르 역시 브리타니아를 정복하는 것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브리타니아를 떠나 갈리아로 귀환했다.('''[[카이사르의 2차 브리타니아 원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